'기존의 상황을 더 선호하는 상황으로 바꾸기 위해 행동의 경로를 고안하는 사람은 누구나 디자인을 한다.' 허버트 사이먼이 『The Sciences of the Artificial』에서 내린 디자인의 정의에는 색도, 폰트도, 화면도 등장하지 않는다. 디자인의 중심은 산출물이 아니라 행동의 경로를 고안하는 판단에 있다는 뜻이다. 디자인은 비즈니스 지표와 사용자 행동 데이터, 유저 인터뷰, 이해관계자 간의 합의가 얽힌 의사결정의 연속이다. 화면 디자인은 그 판단의 최종 output일 뿐이다. 프롬프트 한 줄이면 그럴듯한 화면이 나오는 시대지만 AI가 흔하게 만들어낸 것은 출력물까지다. 판단은 거기 없다.
진짜 문제는 디자인 결정의 근거가 어디에도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디자인의 결과는 캔버스와 제품 코드로 남지만 그 결정을 내린 이유는 담당 디자이너의 머릿속이나 개인 문서, 슬랙 채널의 스레드 어딘가에서 암묵지로 남아 천천히 잊혀진다. 조직이 과거의 의사결정 맥락을 파악하지 못해 헤매고, AI는 그러한 상황에서 그럴듯한 거짓말을 뱉을 수 밖에 없다. 기록되지 않은 데이터에서 논리를 추론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기록이 남아 있어도 사정이 크게 나아지진 않는다. 지난 몇 달간 높은 평가 기준을 두고 AI Agent에게 디자인을 하도록 다양한 시도들을 해보았지만 문서화된 디자인 자산을 비정형 텍스트나 이미지로 취급하며 나오는 결과에는 정말 현재 팀의 디자이너와 같이 사고하고, 추론을 한 결과물로 여길 수 없었다. 근본적으로 '좋은 디자인'을 뽑아내기 어려운 지점을 많이 발견했다.
AI를 통해 '적당히 괜찮은' UI 디자인을 손쉽게 쏟아낼 수 있게 된 오늘날, 디자인의 가치는 사실 많이 폄하되고 있으며 이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Design is dead'를 외치는 이들은 대체로 디자인을 가장 피상적인 수준에서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Claude Design과 Design.md가 그 방증일 것이다. 디자인 지식과 방법론을 읽을 수 있는 형태로 (가장 간단하게는 문서 형태로) 외재화하자는 방향 자체에는 동의하지만 문제는 구조와 입도다. 평문 마크다운 문서는 AI가 수많은 요소들 간의 정의와 연결 관계들을 결정적으로 설명하게 하지 못한다. '인트로 페이지의 CTA 버튼에는 Primary 타입을 사용해야한다' 같은 서술로는 에이전트가 과거 어떠한 실험으로부터 조직이 그러한 러닝과 규칙을 도출했는지 추론할 수 없다. 얕은 시각적 일관성만 좇는 시스템은 규모가 커질수록 구성 요소가 지닌 진정한 의미를 잃는다.
지식의 구조가 없으니 축적도 될 수 없다. 단발적인 대화 세션에 의존하는 Design Agent는 이전 프로젝트의 결정과 인간의 input을 학습하지 못한다. 세션이 끝나면 결정의 맥락은 증발하고 같은 개념이 프로젝트마다 조금씩 다른 의미로 흩어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안타까웠다.
여기까지가 내가 느낀 조직의 한계였다. AI가 진정한 의미의 창조적 디자인을 수행하게 하려면 Agent가 판독할 수 있도록 정형화된 디자인 지식 모델, 곧 온톨로지가 필요하다. Figma 같은 캔버스에서 만든 화면 단위 디자인과 제품의 비즈니스 지표는 물론 디자이너의 의사결정 과정 같은 정성적 판단 기준까지 모두 온톨로지로 구조화해 지식 그래프로 엮을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돌고돌아 결국 온톨로지
온톨로지는 특정 도메인의 Entity, 이들이 지닌 Property, 참여하는 Relation, 그리고 이들이 지켜야 할 Constraints를 형식 논리로 기술한 명세다. 철학에서 존재의 근본 범주를 탐구하는 개념이라면 엔지니어링에서는 기계 시스템이 복잡한 지식 구조를 이해하고 추론하게 해주는 의미론적 상호운용성(Semantic interoperability)의 인프라다.
딱 1년 전쯤, 나는 Palantir의 Ontology Platform 같은 솔루션을 만들고자 하는 스타트업의 일을 잠깐 도왔고, 실제 창업으로 이어지진 못했지만 사내 SaaS의 데이터를 모두 연결해 검색 가능한 Search Engine & Knowledge Base를 구축해주는 아이디어로 덱을 만들어 피칭을 하기도 했다. 복직 후 UX Platform 조직에서 디자이너를 위한 도구와 에이전트를 만드는 데 몰두했다. 그러면서 결국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흩어진 지식을 검색할 수 있는 Design Knowledge Base와 이를 받쳐줄 Data Pipeline이라는 결론에 닿았다. 그래서 문제 제기에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솔루션과 목표를 담은 One-pager를 발제했다. Head의 전폭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며 팀을 꾸리고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디자인 온톨로지 (Design Ontology)
일단 '디자인'이 무엇인지 정의부터 확실히 해보자. 학문적으로나 실제 인더스트리의 맥락에서나 디자인은 예술적 표현이 아니라 주어진 제약 조건 안에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의도적 문제 해결 행위였다. 전공자나 관련업 종사자에게는 당연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이 정의는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역설적으로 인간 고유의 crafting과 직관이 디자인의 중요한 가치로 떠오른 지금은 더욱 그렇다.
디자인을 '기계적이고 정량적인 일'로 정의한다면 그러한 데이터 기반의 최적화나 패턴에 기반한 레이아웃 찍어내기는 AI가 훨씬 빠르게 처리해줄 것이다.
디자인이라는 행위를 온톨로지 관점에서 구조화하는 데는 Function-Behaviour-Structure(FBS) 프레임워크가 인지와 철학 양쪽에서 좋은 토대가 되어줄 것 같다. FBS 온톨로지는 특정 디자인 분야(건축, 기계, 소프트웨어 등)에 국한되지 않고 물리적이든 가상적이든 사회적이든 모든 설계된 아티팩트를 묘사할 수 있는 독립적인 스키마를 제공한다. 이는 복잡한 UI/UX 디자인 에셋을 기계가 이해할 수 있는 단위로 분해하고 조립하는 데 필수적인 기준이 된다.
FBS 프레임워크는 디자인 대상을 세 가지 구성 요소로 정의한다. 첫째, 기능(Function)은 아티팩트의 목적론적 측면으로 'what the object is for'에 답한다. 인간의 목표와 아티팩트의 측정 가능한 효과 사이를 잇는 연결이 세워질 때 비로소 부여된다. 둘째, 행동(Behavior)은 아티팩트의 구조로부터 도출되는 속성으로 'what the object does'를 나타낸다. 품질, 시간, 비용처럼 서로 다른 아티팩트들을 비교할 수 있는 측정 가능한 성능 기준이 여기서 나온다. 셋째, 구조(Structure)는 아티팩트을 이루는 요소들과 그들 간의 관계로 'what the object consists of'를 정의한다.
위 프레임워크에서 흥미로운 점은 기능과 구조가 서로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목적이 어떤 형태로 구현되어야 하는지는 그 자체로 알 수 없다. 인간(디자이너)은 아티팩트를 만들고 써보는 경험을 반복하며 이 셋을 잇는 인과 모델을 머릿속에 쌓아왔다. 설계란 결국 기능을 행동으로(), 행동을 다시 구조로() 번역해 내려가는 과정이다.
이를 디자인 에이전트에 대입해 보면 이렇다. "결제 전환율을 높이고 싶다"는 요구가 기능()으로 들어오면 에이전트는 과거 기록에서 실제로 전환율을 움직였던 행동 지표()를 찾아내고 그 행동을 이끌어냈던 UI 패턴과 색상, 여백 같은 구조()를 역으로 짚어간다. 이 추론의 사슬이 지식 그래프 위에 남을 때 비로소 AI가 화면을 그럴듯하게 조합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근거를 갖고 '디자인'한다고 말할 수 있다.
디자인 의사결정의 온톨로지화
디자인 시스템의 UI 컴포넌트, 컬러 토큰, 타이포그래피 등의 기하학적 정보가 온톨로지라는 건축물을 쌓아 올리는 '벽돌'과 '철근'이라 치면, 이를 지탱하는 제품의 정량적 지표는 '구조 역학'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정말 궁금한 것. 이 건축물이 왜 하필 이런 형태를 띠게 되었는지, 왜 이 위치에 기둥을 세우고 창을 냈는지 설명하는 설계도와 건축가의 의도(Design Rationale, 이하 DR)가 빠진다면 이는 공허한 구조물이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설계는 디자이너뿐 아니라 개발자, 마케터, 기획자, 유저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 사이의 피드백과 타협이 반영된 복합적인 건축 과정이다. 이러한 정성적 판단 기준을 지식화하여 온톨로지에 엮어내지 못하는 시스템은, 도면 없이 쌓아 올린 반쪽짜리 지능에 그친다.
DR은 제품 구성 요소 이면에 존재하는 정당성과 의사결정 과정을 기록하는 행위다. 창조적 아이데이션을 자극하고 개념 설계 단계에서 새로운 해결책을 끌어내는 필수 지식 범주다. 하지만 수많은 조직의 전통적인 워크플로우에서 이러한 지식은 늘 디자이너 개개인의 머릿속에 암묵지(Tacit knowledge) 형태로 머물렀고 여러 제약으로 '올바르게' 기록되지 못했다는 뼈아픈 지점을 발견한다.
DR을 체계적인 데이터로 남기기 위해 IBIS나 QOC 같은 기존 프레임워크를 활용해 볼 수 있다. IBIS가 논의의 흐름을 '이슈-입장-근거'의 그래프로 보여준다면, QOC는 우리가 마주한 설계 공간을 '질문-대안-평가 기준'이라는 매트릭스로 정리해 준다. 이 구조를 스키마로 차용하면, 슬랙에 흩어진 난상토론이나 크리틱 세션의 피드백 역시 온톨로지에 통합할 수 있는 정형 데이터가 된다. 예컨데 아래와 같은 Triple로 구조화할 수 있다.
cta_button --hasVariant--> solid_high_contrast
solid_high_contrast --justifiedBy--> experiment_260703
experiment_260703 --improved--> checkout_cvr
experiment_260703 --rejectedOption--> ghost_button신경망과 심볼릭 체계의 역할 분담이 필요한 지점도 여기다. 비정형 대화에서 이슈와 논거의 후보를 추출하는 일은 LLM이 잘하고 추출된 지식이 스키마와 제약을 준수하는지 검증하며 기존 그래프와의 정합성을 유지하는 일은 심볼릭 계층이 잘한다. 생성은 신경망이, 검증과 추론의 근거 유지는 온톨로지가 맡는 구조가 가장 합당하다.
실제 조직에서
AI와 지식 그래프를 현실에 적용하는 데는 엔지니어링 비용이 적지 않게 든다.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지 머릿속에 청사진이 명확하더라도 이를 내가 속한 조직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구현해 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지식 그래프를 만드는 일과는 별개로 데이터 파이프라인까지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Figma, Slack, Notion 등 다양한 SaaS 플랫폼에 파편화되어 쌓이는 비정형 데이터와 의사결정 내역을 하나의 지식 베이스에 모아와야 한다.
타 도메인은 업무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모으고 활용하는 시스템(DB Table, 마트 등)이 잘 갖춰져 있는 반면 디자인에서는 지표와 정성적 판단 근거를 아울러 명확히 온톨로지화한 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 업계에서 이와 가장 유사한 역할을 고민하는 곳은 아마 사내 디자인 시스템을 운영하고 최적화하는 Design Platform 조직일 것이다. 다만 보통 주된 관심사가 Design System의 UI Component 배포를 관리하고 design to dev handoff를 자동화하고 팀원 간의 작업을 조율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았다. 공급자로써 필요한 파이프라인이 없다. 실무자들의 실제 작업 방식을 관찰해 귀납적으로 반복 패턴을 추출하고 이것이 자동으로 디자인 시스템의 새로운 규칙으로 쌓이도록 만드는 파이프라인 말이다. 디자인 시스템의 설계의 근거와 맥락이 팀 내에서조차 잘 쌓이지 않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여러 곳에서의 정량적 혹은 정성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데이터를 뽑아내 지식 그래프로 잇는 진정한 의미의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운영하는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러한 파이프라인을 자체적으로 구축하려면 각 SaaS의 API를 사용한 커넥터와 파서가 필요하다. 예컨대 슬랙의 논의 스레드나 노션 문서와 피그마 에셋 간의 불일치를 자동으로 감지하려면 이슈 트래커의 ID 같은 공통 기준을 의무적으로 붙이는 조직 차원의 그라운드룰이 있어야 한다. 여기에 데이터 스크래핑, 텍스트의 벡터화, 실시간 동기화를 유지하기 위한 클라우드 인프라 비용까지 총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디자인 온톨로지로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Design Intelligence 조직의 데이터 엔지니어링 역량과 리소스가 필수적이다. 큰 초기 투자 비용을 상쇄할 만큼 확실한 효용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디자인 온톨로지가 성공적으로 작동하려면 이론적 모델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제 작업 환경에서 생성되는 막대한 양의 디자인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추출하고 이를 구조화된 지식으로 매핑하는 엔지니어링 파이프라인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간 내가 만들어왔던 인하우스 디자인 에디터(Deus)가 남아 있었다면 사실 좀 더 수월했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몇 달 전 Figma 도입과 함께 Deus의 종료를 결정했다. 그래서 밑바닥부터 완벽하게 통제하는 수준의 파이프라인 구축은 불가하다. 애초에 모든 데이터와 워크플로우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단일 플랫폼을 구축하겠다는 것은 매력적인 '유토피아'에 불과하다. 현실적인 디자인 온톨로지의 완성은 Figma를 포함해 이미 각 영역에서 고도화된 3rd-party SaaS를 얼마나 매끄럽게 엮어내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거대한 자체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이 아니다.
온톨로지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정량적인 문제들이 AI를 통해 해결된다면 결국 인간에게 남겨지는 본질적인 질문은 하나다. "그래서 우리는 사용자에게 어떤 감각과 경험을 전달할 것인가?" 이는 단순히 지표를 최적화하고 방향성을 설정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데이터만으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 순수한 창작과 크래프팅(Crafting)의 영역이다.
인간의 미묘한 취향과 직관이 만들어내는 이른바 디테일의 엣지는 온톨로지의 논리적 틀 위에서 결코 이룰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기계가 판독할 수 있는 명시지로 치환할 수 없는 진정한 의미의 암묵지(Tacit knowledge)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온톨로지의 목적은 인간의 취향 자체를 규정하거나 대체하는 데 있지 않다. 디자인 에디터가 지향했던 것처럼 디자이너의 섬세한 크래프팅이 시스템 위에서 온전히 구현되도록 가장 정교한 조작 변인을 쥐여주는 든든한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
결론
우리는 디자인을 시각적 요소들을 평면적인 화면 위에 배치하는 일이 아니라 사용자 행동 지표와 복잡한 비즈니스 로직, 그리고 다수의 이해관계자가 얽힌 공학적 협의의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화면 단위의 패턴을 학습해 평균 수준의 디자인을 뽑는 Design Agent만으로는 이 맥락을 이해할 수도, 일관성 있는 디자인 생태계를 유지할 수도 없다. 필요한 것은 캔버스의 구조 데이터, 정량적인 A/B 테스트 지표, 그리고 디자이너 간의 critique과 design rationale까지 포괄하는 Design Ontology다. FBS 프레임워크로 아티팩트을, IBIS와 QOC로 의사결정을 구조화하고 신경망이 추출한 지식을 기호적 제약이 검증하는 파이프라인이 이를 받친다. 에이전트의 모든 산출물이 지식 그래프 위의 근거로 소급 가능해질 때 "결제 버튼, 왜 이 색이에요?"라는 질문은 더 이상 침묵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러한 암묵지를 모두 명시지로 전환하고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지식 베이스를 만들 수 있다면 디자이너의 역할은 급격한 패러다임 전환을 맞이할 것이다. 픽셀 단위의 시각적 형태를 다듬는 사람에서 디자인 룰과 온톨로지를 정의하고 AI 에이전트의 추론 과정을 검토하고 승인하는 지식 시스템의 큐레이터로 무게중심이 더욱 옮겨가리라 기대한다.
요즘 나는 Data Pipeline을 어떤 기술로 구축할 것인가 같은 엔지니어 관점의 질문만큼이나 더 거시적인 질문들을 던지며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이 온톨로지를 누가 만들어가고 어떻게 유지보수할 것인가. 비정형 대화에서 DR을 어디까지 자동으로 추출하고 어디부터 사람이 승인해야 하는가. 온톨로지 스키마는 누가, 얼마나 자주 개정할 것인가. 어떤 핵심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PoC를 진행하고 문제를 어떻게 좁혀나갈 것인가.
p.s. 최근 몇 번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깊게 느끼는 점이 있다면 각자의 철학이 부딪히는 상황에서 프로젝트가 무너지거나 표류하는 것은 정답이 없는 문제에 정답을 찾으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프로젝트의 성공은 결국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과, 이를 정답으로 만들어내는 끈기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아름다운 아키텍처나 솔루션을 고안했어도 구성원들에게 공감대를 얻지 못하거나 끝까지 책임지고 완성해 낼 의지가 없다면 그것은 '틀린' 선택이 된다. 그렇기에 이론적인 완벽함이나 논리적 무결성 같은 단어들은 매혹적이지만 여기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결국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누가 끝까지 관철해 내는가 하는 싸움일 뿐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