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Team,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지난 몇 주간 여러 상황들이 겹치며 반복적으로 무기력감을 느끼고, 팀에서 누구보다 냉소주의적인 태도를 갖고 있지 않았나 하는 자각 때문입니다.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얽혀있는 소모적인 논의, 답답한 의사결정 과정,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나가는 판에 나는 나아갈 준비가 되었음에도 제자리만 돌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 아마 대부분의 분들이 일하면서 비슷한 생각을 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여기에 우리 일의 본질적인 어려움이 더해집니다. 인간의 개입이 점점 0으로 수렴하는 워크플로우에서 '인간을 위한 툴'을 만드는 일. 저는 이 일을 언젠가 올 미래의 polyfill이라 부르며, 그럼에도 단기적으로 인간과 AI 사이의 당장 필요한 툴과 인터페이스를 빠르게 제공하는 것이 우리 뿐 아니라 모든 스타트업에서의 답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 믿음 자체는 지금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제품이 가슴 뛰는 목표와 비전을 가졌다는 것에도 이견이 없습니다. 제가 여전히 이곳에 남아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AI가 인간의 역할을 하나둘 정말 빠른 속도로 대체해나가는 현실은 다른 종류의 무게로 다가옵니다. '어차피 이거 만들어서 뭐해. 몇 개월 뒤면 경쟁 제품들이 쏟아질 텐데', '이만한 비용을 들여 남들보다 더 빨리 더 멋지게 만드는 게 의미가 있어?' 같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시장이 해결해주지 않는 문제를 풀어야한다는 말에 "시장이 해결해주지 않는 문제는 없다"라고 받아쳤던 제 말도 같은 결이었을 겁니다. (정확히는 "제품 차별화만으로는 build or buy 중 build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취지였지만, 그 말의 기저에 냉소가 깔려 있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원망과 무기력감, 두려움 등 여러 감정이 섞여 불과 몇 개월 사이 냉소주의적인 자세로 임하고 있는 저를 스스로 발견했습니다.
냉소주의의 문제
냉소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통찰처럼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냉소는 거리를 두고 상황을 내려다보는 자세를 취하기 때문에 본인에게도 주변에게도 명민함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보면 냉소주의는 통찰이 아니라 방어기제입니다. 기대를 미리 낮춰서 실망을 회피하는 전략이고, 노력을 미리 거둬서 실패의 책임을 회피하는 전략입니다. 통찰은 다음 행동을 만들어내지만, 냉소는 다음 행동을 멈추게 합니다. 저는 이것이 둘을 가르는 가장 명확한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문제는 냉소가 팀의 baseline을 낮춘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냉소는 회의실의 공기를 바꾸고, 바뀐 공기는 다른 사람의 발언 임계치를 올립니다. "어차피 안 될 텐데"라는 말이 한 번 등장한 회의에서 새로운 시도를 제안하려면 이전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해집니다. 냉소는 개인의 태도가 아니라 팀의 환경 변수가 됩니다.
세 번째, 냉소는 자기실현적입니다. 냉소적인 사람은 실패를 예측하고, 그 예측에 맞춰 노력의 총량을 줄이고, 결과적으로 실패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 실패를 자신의 통찰에 대한 증거로 삼습니다. 이 루프는 한 번 시작되면 끊기 어렵습니다.
특히 우리가 하는 일에서 자기실현적 냉소는 치명적입니다. 아직 정답이 없는 영역에서 새로운 도구를 만드는 일은 확신이 원자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의미 있을 것이다'라는 믿음 없이는 디테일에 시간을 쓸 이유가 없고, 디테일이 없는 제품은 다른 누군가가 만든 것과 구분되지 않습니다. AI 시대에 '어차피 며칠 뒤면 누군가 만든다'는 명제는 사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명제로부터 '그러니 우리가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결론으로 넘어가는 순간, 그 자리는 같은 명제를 받아들이지 않은 다른 사람이 차지합니다. 냉소는 정확한 관찰에서 출발할 수 있지만, 행동의 근거로 쓰이는 순간 항상 틀린 결론을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먼저 비판과 냉소를 구분합시다. 비판은 대상에 개입하는 행위이지만, 냉소는 대상에서 빠져나오는 행위입니다. 의사결정 과정이 답답하다면 그것을 어떻게 바꿀지 이야기하는 것은 비판이지만, '어차피 안 바뀔 거다'라고 말하는 것은 냉소입니다. 두 가지는 비슷해 보이지만 팀에 미치는 영향이 정반대입니다. 스스로 어느 쪽에 서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봤으면 합니다. 저부터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타인에게 요구하기 전에 본인의 자세부터 바꿉시다. "다른 사람들이 더 적극적이면 좋겠다"는 말은 그 자체로 냉소의 한 형태입니다. 팀의 분위기는 누군가가 먼저 만들어야 바뀌고, 그 누군가가 본인이 아닐 이유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냉소가 올라올 때 스스로에게 던질 질문 하나를 제안합니다. "내가 이 일이 정말로 의미 있다고 믿는다면,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지금 하고 있는 행동과 다르다면, 그 차이만큼이 냉소가 차지한 자리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것이 의미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믿음이 흔들릴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흔들리는 것과 놓아버리는 것은 다릅니다. 흔들림은 다시 잡으면 되고, 그 작업은 각자 한 명씩 해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AI가 워크플로우와 여러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다시 쓰고 있는 지금, 냉소와 무기력함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있습니다. 어제의 정답이 오늘의 오답이 되고, 몇 달 뒤 풍경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시기에 무언가를 만드는 경험과 우리가 지금 겪는 혼란은 비용이 아니라, 이 시기를 통과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자산입니다. 판이 흔들릴 때 만든 것은 판이 굳은 후에도 남습니다. 그리고 이를 만든 사람은, 다음 판이 흔들릴 때 가장 먼저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제가 여전히 이 일에 몰입하는 이유입니다.
Team, 냉소주의를 뺍시다. 저부터 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