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EN

창업가와 예술가 사이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두 사람, 그리고 그 경계를 탐구하며

같은 화면을 앞에 두고도 나는 두 종류의 생각을 한다. 하나는 디테일 하나가 마음에 들 때까지 같은 지점을 몇 번이고 다시 다듬는다. 효율이나 마감과는 거의 무관한, 미학적 집착에 가까운 시간이다. 다른 하나는 전혀 다른 질문을 한다. 이게 시장에서 먹힐까. 누가 돈을 낼까. 어떻게 반복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까. 두 사고는 서로를 완전히 밀어내지 않는 동시에, 안정적으로 공존한 적도 없다. 창업가와 예술가,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의 나.

창업가와 예술가가 모두 무(無)에서 유(有)를 만든다는 점에서 닮았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둘이 만드는 품은 '작품'과 '상품'으로 그 성격이 다르고, 그것이 세상과 맺는 관계가 다르며, 결국 만드는 사람이 자기 작업을 평가하는 기준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창업가가 만드는 것은 본질적으로 상품이다. 상품은 누군가의 필요와 만나야 비로소 상품이 된다. 그래서 창업가의 사고는 늘 시장의 언어로 번역된다. 누가 이것을 원하는가, 얼마를 낼 의향이 있는가, 어떤 경로로 닿을 수 있는가, 다음에도 똑같이 닿을 수 있는가. 확장성과 재현성이 미덕인 이유는 상품이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품은 닿는 사람의 수만큼 가치를 누적한다.

예술가는 반대 방향에서 출발한다. 작품의 시작점은 시장이 아니라 예술가 내면의 목소리다. 무엇을 표현해야 하는지를 먼저 묻고, 그 표현이 가능한 언어를 찾기 위해 기꺼이 비효율을 감수한다. 효율화는 곧 표준화이고, 표준화는 작품의 단독성을 직접 훼손하기 때문이다. 예술가에게 진정성과 고유성은 정서적 수사가 아니라 작업의 구조적 조건이다. 단 한 사람의 마음에라도 오래 남을 수 있다면, 그 작품은 자기 역할을 다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한쪽이 넓히고 다른 쪽이 깊게 파는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힘은 경쟁 관계라기보다는 상호 보완적인 역할로 생각된다. 고유성이 없는 확장은 메시지가 비어 있다. 고객에게 닿기는 닿는데 무엇이 닿았는지가 남지 않는다. 확장이 없는 고유성은 영향력이 갇힌다. 깊이 파였는데 그 깊이를 누구도 보지 못한다. 둘 중 하나만 가진 작업은 결국 절반의 작업이다.

그렇다면 이 둘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흔히 '창업가의 시선으로 보고 예술가의 마음으로 만든다'는 식으로 표현되지만, 이 말은 듣기에 좋을 뿐 작업의 실전에서 도움되는 말은 아니다. 두 논리는 같은 순간에 적용되기 어렵다.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한 안은 단계 사이의 전환이 아닐까.

내가 관찰한 바로 전환은 대체로 세 단계에서 일어났다.

첫째는 문제 정의의 단계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결정할 때는 창업가의 질문이 더 유용하다. 누구의 어떤 결핍을 다룰 것인가, 그 결핍이 충분히 보편적인가, 보편적이라면 왜 지금 그 자리가 비어 있는가. 이 단계에서 예술가의 직관이 너무 빨리 개입하면, 자기 표현 욕구가 시장의 필요를 가려버린다.

둘째는 해답의 형태를 잡는 단계다. 여기서는 예술가의 감각이 결정적이다. 동일한 문제에 대한 합리적 해답은 보통 여러 개이고, 그중 무엇이 사람의 마음에 실제로 가닿는지는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는다. 이 단계에서 창업가의 사고가 너무 빨리 개입하면, 검증 가능한 형태만 남고 고유성은 사라진다.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해답들의 평균에 수렴한다.

셋째는 전달의 단계다. 다시 창업가의 논리가 우세해지는 영역이다. 아무리 깊이 만든 것이라도 닿지 못하면 가치를 갖지 못하고, 닿게 하는 일은 상품의 영역이다. 예술가가 이 단계를 자기 일이 아니라고 느낄 때, 그가 만든 것은 작품으로 남되 아무도 보지 못하는 작품으로 남는다.

이 세 단계를 순서로 본다면, 창업가와 예술가의 균형은 동시성의 문제가 아니라 시퀀스의 문제다. 같은 순간에 두 페르소나를 동시에 가동하려는 시도는 대체로 둘 다 약화시킨다. 더 정확한 질문은 '지금 나는 어느 단계에 있는가, 그 단계가 요구하는 논리는 무엇인가'이다.

두 페르소나 사이에서 오래 흔들려온 것은, 아마도 둘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사람이 되고자 했기 때문 아닐까. 디자인 작업대 앞의 나와 비즈니스 모델을 그리는 나는 같은 순간에 같은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는데도, 나는 그 둘을 한 번에 해내려 했다. 그러나 둘은 동시에 만족시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작업의 단계마다 번갈아 바꿔야 할 두 모드에 가까운 것 같다. 이 전환을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두 사고를 자기 안에 함께 가진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실용적인 통합이 아닐까.